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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타는 내 가게 TV로 봐야했다”

미니애폴리스는 아수라장이었다. 당시 시위대는 경찰서 주변 지역까지 초토화시켰다. 곳곳엔 욕설이 담긴 낙서, 반감의 벽화가 가득하다. 길을 건넜다. 남김없이 다 타버린 ‘미네하하(minnehaha) 주류판매점’을 한참 바라봤다. 파괴의 잔재는 섬뜩하다. 분노에 의한 게 아니다. 광기가 헤집은 흔적임이 분명하다. 혼란의 현장에서 한인 업주들도 피해자가 됐다. 박경식 씨는 유니버시티 애비뉴에서 12년간 옷가게(투뉴욕)를 운영해왔다. 가게는 하루 아침에 폐허로 변했다. 박 씨는 “5월28일 오후 8시가 넘었을 때다. 수십 명이 문을 부수고 가게를 털어가더라. 얼마 후 TV 라이브 방송을 통해 가게가 입점한 몰이 불에 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참담했다. 과거 LA폭동 당시 장면을 TV로 봤었는데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플로이드 관련 시위로 피해를 입은 한인 업소는 미네소타한인회(회장 황효숙)가 확인한 곳만 10개 업체다. 그중 6곳은 전소됐다. 미네소타 한인 사회는 십시일반 성금(2만4088달러)까지 모았다. 45년째 미네소타에 사는 한현숙(83)씨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반대한다. 한인으로서, 소수계로서 그들과 뜻을 같이한다”며 “하지만, 과격 시위나 그런 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일에는 마음을 같이하지 않는다. 폭력은 또 다른 피해를 낳을 뿐”이라고 말했다. 통제되지 않는 분노는 명분을 잃는다. 진정성마저 사라진다. 그래서일까. 과격 시위는 잦아들었다. 다만, 이면의 그늘은 그대로다. 미니애폴리스 장열 기자

2020-06-18

플로이드가 시든 곳엔 또 다른 생기가…

수많은 꽃이 회색빛 아스팔트길 곳곳을 덮고 있었다. 본연의 색을 잃은 꽃은 그저 애처롭다. 시듦은 시간의 흐름을 내포한다. 잠시 쪼그려 앉았다. 시든 꽃에 손을 대보았다. 생기가 없으니 쉽사리 바스라졌다. 조지 플로이드는 그 길 위에서 시들었다. ‘8분46초’. 짓눌림에 생명을 잃어간 시간이다. 지난 16일 미니애폴리스 지역 시카고 애비뉴와 이스트 38가를 찾았다. 분노와 저항이 들불처럼 번져나간 곳이다. 지금은 역설의 지점이다. 죽음을 통해 인식이 부활했다. 플로이드가 숨진 지 23일째다. 당시 사건은 동네 마켓인 ‘컵푸즈(Cup Foods)’ 바로 앞에서 발생했다. 미네소타주는 업주가 위조 지폐를 발견하면 반드시 경찰에 알려야 한다. 컵푸즈는 규정에 따라 플로이드가 내놓은 위조 지폐(20달러)를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조지 플로이드가 스러져 간 곳은 ‘컵푸즈(Cup Foods)’라는 마켓 앞이다. 2대째 운영(31년)중인 가족 비즈니스다. 현재 플로이드 유가족을 돕기 위한 기금도 모으고 있다. 업주 마하무드 아부마야레씨는 “이제는 고객과 관련된 일로 더 이상 경찰에 전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차라리 우리는 경찰이 폭력적으로 개입하지 않게끔 비폭력 전략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사건 지역 사거리로는 차량 진입이 불가하다. 바리케이드는 오는 21일까지 이곳에 놓이게 된다. 금지, 통제의 의미를 담은 바리케이드는 되레 자유의 공간을 생성했다. 막는 이는 없다. 도보로 오가는 것은 얼마든지 용이하다. 흑인만의 공간도 아니다. 아시안, 히스패닉, 백인 등 다양한 색깔의 인종이 플로이드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이날만 해도 어림잡아 200여 명은 넘어 보였다. 야니스 라카(27·시민운동가)씨는 “이곳은 ‘성지(sacred ground)’와 같은 곳”이라고 했다. 라카씨는 “지금 여기를 봐라. 경찰은 단 한 명도 없는데 우리는 더 평화롭다”며 “정치인들은 이번 시위를 두고 여전히 좌와 우를 따지고 반정부 극단 주의자, 정치적 훌리건 등 정치적 논쟁에 치중하지만 이곳에는 대립과 다툼이 없다”고 말했다. 사거리 중심엔 흑인 민권 운동의 상징인 ‘블랙 파워 설루트(black power salute)’가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차별은 오랜 시간 그들의 역사로 스몄다. 설움은 일상에서 축적됐다. 그들의 울분을 단지 피해 의식으로만 치부하기가 어렵다. 자니스 알리야(초등학교 교사)씨는 한동안 그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비극(차별)을 긴 시간 침묵으로 감내해 왔다”고 했다. 알리야씨는 “음악을 크게 틀고, 큰 소리로 웃거나, 슬리퍼를 신고 다니면 ‘역시 흑인들이군…'이라며 비웃음을 듣는다”며 "사회는 우리(흑인)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았다. 그동안 ‘앵글로색슨’이 마치 사회의 표준인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플로이드가 시들어간 이곳에서는 변화를 요구한다. 아니 절실하다. 그건 또 다른 생기다. 미니애폴리스 장열 기자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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